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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학의 위인 허준, 장기려, 박에스더

by twinmommygo 2025. 6. 29.

청진기

한국의 의료 역사에는 아픈 이들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이들의 나눔과 봉사 정신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지켜온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표적인 한국의학의 위인 3인, 허준, 장기려, 그리고 박에스더의 삶과 업적을 비교 분석하며, 이들이 시대와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의료 정신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살펴봅니다.

허준: 조선 인술의 상징

허준(1539~1615)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내의원 의관으로서, 조선 의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명종과 선조, 광해군 등 세 왕을 모셨으며, 특히 《동의보감》을 편찬한 업적으로 후세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학 서적을 넘어서, 당시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준 인류 의학의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진료 철학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삶의 질 개선과 예방 중심 의료였으며,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혁신적이었습니다. 허준은 당시 특권계층 중심이었던 의료 환경 속에서도 백성의 삶을 돌보는 것을 의료의 핵심 가치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동의보감》은 약재를 고급스럽게만 설명하는 대신, 서민들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기반으로 처방을 구성했습니다. 이 같은 실용적 접근은 조선 사회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 향상에 기여했고, 의료의 대중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는 병을 단순히 육체적 현상이 아닌 정신과 환경, 식생활 등 다양한 요인과 연계해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관점이었으며, 공공의료의 시초라 불릴 만한 사고였습니다. 허준은 단지 뛰어난 내의원이 아닌, '누구나 진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철학을 지닌 인술가였으며, 그의 정신은 이후 세대의 의사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남기고 있습니다.

장기려: 현대 의료 봉사의 상징

장기려(1911~1995)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외과 의사이며, 평생을 무소유와 의료봉사에 바친 인물입니다. 평안북도 출신인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부산에서 본격적인 의료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이 개인병원을 차리며 수익을 우선시했던 시대에, 그는 자신의 수술비를 받지 않거나,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무료로 치료를 제공하는 등 전례 없는 의료 윤리를 실천했습니다. 장기려는 진료는 물론이고, 제도 개혁에도 참여했습니다. 특히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여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보험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이는 한국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원형으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강조한 ‘병원은 수익기관이 아니라 봉사의 장’이라는 철학은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선구적 시각이 높이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부산 복음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는 실제로 매달 월급을 병원에 반납하며 생활했고, 무의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외과 수술을 제공하는 등 의료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였고, 빈소조차 초라한 천막에 마련되었을 정도로 물질적 욕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장기려의 삶은 의료인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참된 봉사’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로 남아 있습니다.

박에스더: 여성 최초의 의사이자 나눔의 선구자

박에스더(1876~1910)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로, 20세기 초 조선 사회의 성차별적 의료 환경을 돌파하며 수많은 여성과 아동을 살린 인술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미국 메디컬 칼리지를 졸업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여성 환자만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했으며, 주로 산부인과 및 여성 질환에 집중해 치료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기 꺼려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말 그대로 ‘생명의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박에스더는 진료소를 통해 무상 치료, 약 제공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의 건강을 돌보았습니다. 그녀의 진료소는 가난한 여성과 소외 계층이 주요 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운영이 어렵기도 했지만 기부와 후원, 자신의 사비를 통해 끝까지 운영을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의료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확고히 한 선구적 인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활동했으며, 간호사 양성학교를 설립하여 의료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지역 보건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공헌했습니다. 또한 박에스더는 직접 지방으로 내려가 보건소 역할을 자처하며 순회진료를 시행했고, 위생교육과 예방의학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한국 여성 의료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서 역사에 길이 남아 있습니다.

 

허준, 장기려, 박에스더는 각각 다른 시대와 조건 속에서도 ‘아픈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의료’라는 공통 철학을 실천한 인물들입니다. 세 사람 모두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중심에 둔 접근으로 각자의 시대에서 의료의 개념을 확장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통해 의료인이 지녀야 할 진정한 자세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의료의 방향이 어디인지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감동과 교훈을 주며, 인술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